[스크랩] 전국의 오지마을
전국의 오지마을에 대해 소개한 글을 발췌하였습니다.
1.영월 와석리 어둔마을 |
2007/05/11 09:3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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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경상북도 최고의 두메, 봉화군에서도 가장 외진 벽지로 알아주는 곳이다. 산세가 벼랑을 이루며 곳곳에 크고 작은 폭포와 깊은 소가 즐비하다.
태백산 남류맥이 청옥산과 각화산의 지겟가지를 벌리면 그 안쪽에 현동 60릿골이 펼쳐진다.
현동골은 잔대미에서 홍제사골의 물을 보태 10여 리 아래의 현동리에서 낙동강으로 흐른다.
이런 지형적 조건에 소천면이 위치한다. 비탈이 심해 한 면의 넓이가 한 군의 넓이보다 넓다고 하면 이곳 땅의 특징을 금방 알게 된다.
게다가 얼마나 외진 곳이면 춘양면과 경계를 이루는 각화산 기슭의 각화사 어름에 태백산사고를 세웠겠는가. 홍제삿골의 끝마을이 홍점마을이다. 인심 좋기로 소문이 근동에 자자하다.
태백을 벗어나 경상도와 의 경계인 돌고개를 지나서 열목어 서식지라는 백천계곡를 넘으면 길고 긴 흰뱅이골이 나온다. 홍제삿골과 만나는 곳에 작은 학교가 하나 세워져있다.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천초등학교 황평분교다. 가르칠 아이들이 너무 적어 폐교되는 운명을 맞은 그런 학교다.
예전에는 40여 가구의 주민이 살았으나 모두 이주하고 10여 가구를 밑도는 사람들이 홍제삿골을 지키고 있다. 홍제삿골에서 홍점마을로 가는 냇가에는 기가 막힌 봉우리가 솟아 있다.
'벼락바우'라는 암봉이다. 몇 년전 도깨비에 홀린 어떤 사람이 이 바위 위에서 도깨비와 밤새 술판을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날이 샌 뒤에 보니 간밤에 그토록 마셨던 술이 모두 쇠똥이더라는 것이다.
그바위 아래의 맑은 물에는 피리, 꺽지가 유유자적하며 헤엄을 치고 있다. 이 물줄기을 따라가면 넓은 채소를 가꾸고 벌을 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마을은 언덕 위에 성황당이 멋지게 자리잡고 있다. 반달형의 명당터에 성황당이 있어 그 품새가 그럴 듯하다.
성황당 옆에 집이 한 채있는데 이곳에서 고시 공부를 한사람들이 모두 합격을 하여 명당의 체면을 톡톡히 세워 준다. 성황당은 매년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안을 들여다보면 태백산령 성황지위라는 위패가 있다. 함석집을 지나 왼쪽 골짜기를 1Km 정도 올라가면 신라때 고찰이라는 홍제사가 나타난다.
현대의 건물은 30년 전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 세월의 손때를 느낄 수 없다. 절을 뒤로하고 계속 골짜기를 올라가면 좌우 산세가 벼랑을 이루고 있고 곳곳에 크고 작은 폭포와 깊은 소가 즐비하다. 무릉도원의 입구처럼 그 경치가 빼어나다. 애기무덤을 가기 위해 산비탈을 오르면 그야말로 무인지경이 이어지면서 세상과 완전히 차단되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10여리 걸으면 당도하게 되는 애기무덤. 양지쪽 산비탈에 있다. 옛날 어느 때인지 몰라도 이 길을 통해 삼척 땅으로 가던 골 원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데리고 가던 딸이 갑자기 죽게 되었다. 먼 여행길에 노독이 났던 것이다. 원님은 할수 없이 이곳에 딸을 묻고 갔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벌초를 해주면 복을 받게 된다고 했다. 복을 받기 위해서인지 사람들은 가끔 벌초를 해준다고 한다.
13. 울진 '왕피리'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왕피리는 오지치고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주민수가 격감하는 것이 오지의 운명인데 이곳만은 유달리 주민수가 줄지 않고 오히려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그런 곳이다. 길목은 맑고 깨끗한 왕피천이 흐르면 허물어진 굴피집도 볼 수 있다.
왕피리로 넘어가는 길목인 통고산의 박달대는 통곡하며 넘어가는 고갯길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왕피리에서 통곡하며 박달재를 넘는 주인공은 고려의 공민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건적을 피해 피난을 왔던 공민왕이 안동과 영양까지 피난을 왔다가 이 고개를 넘으며 통곡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왕피천은 양쪽이 절벽인데다 여러 곳에 깊은 웅덩이가 패어 있어 지나다니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다.
왕피리를 찾는 방법은 봉화행 버스를 타고 불영계곡을 거슬러 오르다가 삼근리에 하차. 두어 시간을 걸어야 박달재에 오를 수 있다. 삼근에서 왕피리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한차례 밖에 다니지 않는다. 버스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대부분 걸어서 간다.
30리 길을 걸어야 한천마을까지 다다를 수 있는데 험준한 산세가 보여주는 다양한 풍경을 구경 할 수 있다. 직선거리는 불과 20리밖에 되지 않지만 산이 가로막혀 산을 돌아가게 되어 걸어야 하는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주민들은 지름길을 따라 익숙한 발걸음으로는 두 시간 걸린다고 하지만 초행길인 사람들은 찻길을 따라 걷게되면 박달재에 오르는 데만도 두시간이 걸린다. 박달재 일대는 춘양목 자생지로 유명하다.
한 나무에서 전봇대 3개를 끓어내도 아래 위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곧게 자란다는 춘양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고갯마루를 올라서면 왕피천 오지를 감싼 주변의 산군이 펼쳐진다.
한국이 산이 많은 나라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동쪽의 대령산, 남서쪽의 금장산과 만나서는 태백산맥의 일월산 등이 첩첩으로 싸여 있다. 박달재에서 남쪽 산록의 급사면을 곧추 내려가면 안골마을이 나온다.
이곳부터가 왕피리다. 왕피리의 본 마을은 안골마을에서 내려가는 지류가 왕피천과 마주치는 지점에 있는 거리골이다. 거리골은 오지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이 덜하다. 오지마을의 전형을 보고싶다면 통고산 동쪽기슭에 있는 장재터로 향한다. 능선위로 올라서 고갯마루를 넘으면 장재터가 시작된다.
장재터는 원래 광산촌이다. 그러나 광산들이 폐광되면서 주민들이 이곳을 떠나 오지답게 주민 수가 적다. 장재라는 지명은 이 일대에 주석노다지 광이 있어 큰돈벌이 되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계곡이 협소하고 물 사정이 넉넉지 않아 땅을 일구며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마을의 느낌은 삭막하다. 농토가 없고 대신 분교 운동장의 녹슬은 슬레트 지붕만이 덩그러니 보인다. 왕피리 안쪽에 위치한 동수곡을 가는 길목은 맑고 깨끗한 왕피천이 흐른다. 길가에는 허물어진 굴피집이 있다.
동수곡에서 한천 마을까지는 약6Km 그 구간은 무인지경이의 원시림이 펼쳐진다. 양안은 거의 절벽으로 일어서 있고 통로는 개울 안으로 이어진다. 가끔 넓어지는 곳마다 집터가 있을 뿐 사람들이 전혀 살지 않는다.
한천으로 들어서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춘양목이 하늘을 가린 고갯마루에 펼쳐지는 양한천 일대의 정경은 한국 오지마을의 전형을 이룬다. 수석 같은 기암으로 이뤄진 하안을 따라 굽이치는 물 맑은 왕피천에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남향에 옹기종기 터를 잡고있는 농가들. 우리네 한국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그리는 그런 마을의 모습을 왕피리는 간직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 왕피리는 울진읍에서 30Km 정도 떨어져 있다.
▶ 찾아가는 길
울진 보다는 영주를 경유 하는게 편하다. 영주에서 울진행 버스를 타고 서면 삼근리에 하차하면 된다. 삼근에서 왕피리로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 한차례 밖에 없다. 도보로 갈 경우 삼근에서 왕피초등학교까지 4-5시간 정도 걸린다. 산으로 들러가지 말고 찻길을 따라 우회를 해야 한다.
삼근에서 동수골까지는 4시간 소요. 삼근에서 박달재를 넘어 학교 건너편 안마을로 들어서 남쪽으로 가로막은 능선길로 들어서면 다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14. 정선 "연포, 소사마을"
우리나라에서 오지 마을이 가장 많은 곳은 정선과 영월 부근이다. 연소,소사마을도 정선에 위치한다. 동강 변의 오지마을처럼 이곳도 지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오지를 벗어나기 힘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어 오지 신세를 선천적으로 타고 난 곳
지형적으로 볼 때 동강이 정선에서 시작되고 정선 포구로 유입되면서 끝나게 되는데 이 마을들은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정선 쪽에서나 영월 쪽에서나 모두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적으로 볼때는 정선군과 영월군 그리고 평창군의 경계가 갈라지는 백룡동굴에서 2Km 떨어진 남쪽에 위치한다. 때문에 이마을을 들어가려면 정선이나 영월 평창 어디서건 1시간 이상 시외버스를 탄다음 산길을 서너시간 걸어야 마을에 당도할수 있는 산간오지마을이다. 이 마을을 가려면 신동읍 예미리를 경우해 가는 것이 가장 좋다.
평구나 고성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하여 산을 접어들어야 한다. 협곡으로 들러서서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게 되면 동강과 만나게 된다. 길은 오직 외길. 서쪽으로 흐르는 물길 뿐이다. 강의 양안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세워져 있어 이방인의 기를 한껏 꺾어 놓는다. 서쪽에 험준하게 솟아오른 신병산을 우회할 수밖에 없다.
신병산 동쪽에 원덕천이라는 마을을 경유하여 동쪽 산록을 타고 소동을 지나 2시간 남짓 걸어가면 소사마을 어귀에 다다르게 된다.
토벽의 담배 건조막을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소사마을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외지인을 맞는다. 10가구 정도의 주민이 사는 마을은 밭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 나간다. 전기는 일찍부터 들어왔다. 동강 따라 전신주를 설치하는 것이 용이하여 79년에 전기가 들어왔고 전화는 86년에 가설되었다.
소사마을의 강 건너편에 연포마을이 있다. 마을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이 두 마을 건너다니기 위해 삽다리가 놓여 있는데 국내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삽다리란 소나무로 만든 다리로 장마 때가 되면 동강물에 휩쓸려 다리가 없어진다. 두 마을 사람들은 두레를 통해 장마가 끝난 뒤 다리를 다시 놓고 하는 식으로 다리를 매년 만든다.
다리가 떠내려가는 장마 때에는 나룻배를 타고 왕래를 해야 한다. 연포에 있는 고성초등학교 연포분교로 통학을 하는 아이들은 배를 타고 등교를 하게된다. 소사의 강변은 풀밭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어 야영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 유독 굴이 많은 동네라 밤이면 먹이를 찾아 나온 박쥐들이 냇가를 떠돌고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냇가에서 보면 연포마을이 건너다 보이고 초등학교의 뒤에는 세 개의 봉우리에 달이 뜨는 모습은 가히 고혹적이다. 봉우리마다 달이 저마다 떠서 달이 세 번이 뜨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 찾아가는 길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를 경유하여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예미에서는 운치리까지 가는 마을 버스가 있다. 그 버스를 타고 평구나 고성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하여 산길로 접어들면 된다. 좌측에 이정표가 있다. 6.4Km 정도 도보로 걸어 들어가면 마을이 나온다. 이 비포장도로는 지프차의 통행이 가능하다.
15. 봉화 두음리 '듬골'
봉화군의 춘양면과 소천면은 춘양목으로 널리 알려진 적송의 원산지이다. 이곳의 붉은 몸체의 소나무는 최고의 건축자재로 각광을 받아 예부터 궁궐이나 사찰 또는 관청은 물론 대가집의 드높은 용마루를 떠받치는 기둥감으로 애용되었다.
16. 인제 '설피밭'
열목어는 눈에 열이 많아 그 열을 식히기 위해 늘 차가운 물을 찾아 강물을 거슬러 오르며 사는 냉수어족으로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이 열목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설피밭이다. 이 고기들이 살고 있어 물이 매우 맑고 깨끗하다.
17. 하동 '논골마을'
지리산 기슭에 자리잡은 논골마을. 하동군 청암면 금남리에서 북쪽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18. 경남 산청 '오봉마을'
툇마루에 누워 산장에서처럼 지리산 자락을 고즈넉이 바라볼 수 있는 마을이 바로 오봉마을이다.
19. 단양 '빗재마을'
단양의 빗재마을은 마을 아이들이 청화백자의 파편으로 소꿉놀이를 하는 그런 곳이다. 선조들이 주변의 토지 특성을 살려 지혜롭게 빚어낸 청화백자가 오늘날의 분청자완으로 변하기까지 빗재마을은 도자기 변천사와 운명을 함께 한다.
20. 장수 '신기마을'
청학동 도인들이 새로 이주한 마을인 신기마을은 소백산맥의 맹주인 덕유산이 지리산으로 산줄기를 넘기기 전에 무주, 진안, 장수군 일대에 무진장의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21. 청송 '내원동'
주왕산 기슭에 자리를 잡은 내원동. 이곳을 가려면 청송읍을 지나 주왕상으로 가야 한다. 주왕산 입구를 지나면 매표소 부근에 대전사가 있고 절을 돌아 내원동 큰골에서 발원하는 내를 따라오른다.
주왕산 제3폭포에서 15분쯤 산길을 걸으면 `전기 없는 마을`로 알려진 오지마을 내원동이다. 9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차가 들어오지 못하고, 전화도 없는 외딴 산동네. 국립공원지역이어서 전봇대는 없지만 발전기나 태양열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 쓴다. 첫집은 22년전 문닫은 주왕산초등학교 내원분교. 등산객들을 맞는 간이식당·찻집이 들어섰다.
주민들은 본디 담배농사나 보리·기장·메밀과 채소 따위를 재배하며 살았지만,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식당이나 민박을 하며 산다. 농가를 개조한 식당들에서 도토리묵·파전 등과 약초술들을 판다. 내원동은 바람이 세기로 이름높은 마을이다. 주민들은 “제주도와는 바람에 관한 한 사돈지간”, “세기로 따져 제주도 바람에 앞선다”고 주저없이 말한다.
늦가을 매운 바람에 휘날리는 마을 가운데의 억새밭이 제주도를 연상케한다. 어린 산수유나무에 지줏대를 세우던 주민 김재창(71)씨는 “올해는 단풍이 들다 말고 져버려 아쉽다”면서도 “단풍이 곱지 않아도 경치는 그대로”라며 마을 자랑을 잊지 않는다. 마을길을 더 오르면 가메봉(882m)을 거쳐 제2폭포로 내려서는 등산길을 탈 수 있다.
22. 청송 '계당리'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이 있을까? 이런 마을이 바로 청송의 오지마을 계당리다. 95년 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떠나 마을은 무인지경으로 남아있다.
23. 홍천 명개리 '아침가리'
아침에 밭을 간다는 뜻의 아침가리는 지도상으로는 '조경동'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마을이다.
24. 강원 인제 미산계곡(한강)
오대산 서쪽, 강원도 인제군 내린천 미산계곡은 한강(북한강)의 최상류 지역이다. 오지의 때가 어느정도는 벗어졌지만 깊은 산속을 구비도는 계류는 예전과 변함없이 맑고 푸르다. 계곡의 경관이 뛰어나며 수량도 풍부하다. 청정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운 휴가여행지로 삼을만 하다.
25. 경북 봉화 옥방천(낙동강)
경북 봉화는 낙동강의 최상류지역이다. 부산앞바다에서부터 장장 800리를 거슬러 올라간 낙동강은 강원도와의 접경인 경북 봉화 일원에서 수많은 청정지류를 형성한다. 그 중 남회룡리 일원의 옥방천은 상류 중에서도 최상류 지역으로 산골오지마을 기행과 더불어 깨끗하고 조용한 계곡탐승도 겸할 수 있다.
26. 충북 보은 만수/서원계곡(금강)
남한 3대강에 속하는 금강은 지류가 매우 넓게 발달되어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 그리고 경북땅에서 물줄기를 받아 유역을 확장해 나간다. 특히 충북 보은 속리산 남쪽자락은 금강의 최상류지역으로 서원계곡과 삼가저수지, 오지산골 만수계곡의 비경이 비교적 때묻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곳이다.
27. 전북 진안 백운동 계곡(섬진강)
낙동강처럼 남해바다로 흘러드는 섬진강은 전남과 경남의 경계를 구분짓고 구례 곡성을 지나 전북 남원~임실~진안에까지 물줄기가 이어진다. 진안군 백운면에 이르면 섬진강 발원지인 신암계곡과 뛰어난 계곡경승을 간직한 백운동계곡에 이른다. 마이산, 성수산, 팔공산 등의 명산기행도 겸하고 깨끗한 계곡에서의 피서도 즐길수 있다.
28. 전남 담양 가마골(영산강)
전남 담양 가마골은 남한 5대강의 막내동이, 호남의 젖줄 영산강의 발원지이다. 목포를 거슬러 나주, 광주를 거쳐 담양읍에 이르고 풍치절경의 추월산과 담양호반을 지나면 감추어진 비경지대 가마골을 찾아낼 수 있다. 계곡 주변에 야영장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골짜기마다 여러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 트레킹 또는 가벼운 도보여행도 무리없이 즐길 수 있다.
29. 경남 울산 석남사 계곡(태화강)
태화강은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몇 안되는 강 중 하나로, 오늘날의 울산광역시를 있게 한 명수(明水)로 불리운다. 특히 상류부의 영남알프스 산군의 중심인 석남사골 계곡은 울산시내의 강 하류부와는 딴판으로 곳곳에 절경과 명승, 수려한 계곡 풍광이 빛나는 일급 피서지이다. 이웃한 가지산도립공원 일원의 산악공원, 각종 문화유적 답사, 그리고 시원한 계곡여행코스로 추천할 만 하다.
30. 강원 백전 물레방아마을
곡식을 찧던 삶의 터전이자 불륜의 현장(?)이던 물레방앗간. 아직도 물레방아를 사용하는 마을은 전국을 통틀어 이곳이 유일하다.다른 곳의 물레방아는 토속적인 멋을 더하기 위한 전시용일 뿐이다.
마을 어귀의 물레방앗간은 3평 정도의 허름한 목조건물이다.‘물레’(바퀴부분)는 건물 밖에,‘방아’(곡식을 찧는 공이)는 안에 설치돼 있다.
물레는 직경 250㎝,방아의 길이는 140㎝,방아는 직경 15㎝.물이 흐르면 물레가 돌아가고 방아는 상하운동을 하며 곡식을 찧는다.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자연에 순응하며 그 품에 안겨 ‘물의 힘’으로 곡식을 찧어왔다.
150여년 된 물레방아가 요즘도 제 기능을 하는 것은 수량이 풍부해서다.물 공급원은 마을에서 3㎞ 떨어진 해발 1000여m의 용소(龍沼).이 지하동굴에서 물이 콸콸 용솟음쳐 물레방아로 흘러내려온다.
그 많던 전국의 물레방아는 예전만큼 물이 흐르지 않아 바퀴를 돌릴 수 없었다.그래서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몇년에 한번씩 보수하면 물레방아는 이 마을 16가구가 먹을 쌀 콩 고추를 너끈히 찧어낸다.마을 사람 누구든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명절을 앞두면 떡방아를 찧으려는 아낙네들로 북적거린다.
정선읍에서 차로 1시간.누런 황소가 마당에서 포근한 봄볕을 쬐고 처마엔 옥수수와 호박이 걸린 오지마을이다.하지만 험한 산길을 누빌 힘좋은 트럭이 집집마다 세워져 있다.‘토속’과 ‘현대’는 공존할 수 있다는 느낌이다.
물레방아마을은 정선군 사북읍까지 가서 북일리∼백전삼거리를 거쳐 찾아갈 수 있다.
31. 화천 비수구미
강원도 화천군의 비수구미마을은 강원도 안에서도 대표적 오지마을이다.
마을 뒤로는 산세가 험한 해산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파로호가 누워 있다. 평화의 댐 접근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오지마을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금도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일단 승용차로 경춘가도를 달려 화천읍을 통과한 뒤 북한강 상류인 파로호 북쪽, 평화의 댐 아래편 강변에서 보트로 갈아타고 들어가야 한다. 한국전쟁 뒤 사람들이 들어와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많을 때는 6가구가 밭을 일구었지만 화전이 금지되면서 3가구만 남게 됐다. 마을 한가운데로는 해산(1190m)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흘러 파로호로 내려간다.
오염원이 전혀 없으니 계곡물은 청정하기만 하다. 들리느니 새소리와 물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뿐이다. 미리 민박을 하는 세 가구에 전화를 해야 보트가 마중을 나온다. 화천읍에서 해산터널을 지나고 평화의 댐에 닿기 전 강변에 수하리낚시터라는 입간판과 조립식 건물 한 채가 눈에 띈다.
이곳 강변이 바로 수하리 선착장. 보트를 타면 3~5분 정도 후 비수구미 마을에 닿는다.
아직도 찾는 이가 드문 비수구미마을의 계곡은 더위 탈출에 더없이 좋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골바람이며 호수를 휘돌아 올라오는 강바람이 워낙 서늘해 삼복 더위에도 밤이면 난방을 해야 한다. 민박집들은 보일러 시설을 갖췄지만 장작불을 때주는 방도 있다.
▶ 가는길
화천이나 양구에서 평화의 댐 방면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없다. 화천읍을 지나 해산터널을 통과,해산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평화의 댐을 향해 내려가면 수하리낚시터가 나타난다. 이곳 강변에 차를 대고 모터보트로 갈아탄다. 마을 주민들에게 미리 전화로 연락해야 보트를 이용할 수 있다. 왕복 2만원.
32. 사람이 그리운 간이역 - 심포리역
승용차가 접근하지 못하는 역. 그곳에서 근무하는 역무원들은 "사람이 그립다"고 말한다. 높은 산중턱에 있어 봄이 평지보다 10여일 늦게 찾아온다. 산과 들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개나리, 진달래도 이제야 고개를 숙이고 뒤를 이은 싸리꽃이 봄의 교향악을 하얗게 연주한다.
온통 푸른 색에 둘러싸인 심포리역(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한때 잡상인들로 북적거리던 이곳이 이젠 한적한 간이역으로 변했다. 통리역과 연결되는 하루 4편의 비둘기호가 밖의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통로. 역사(驛舍)에서 태백 ~ 삼척을 잇는 국도 38번과 만나는 곳까지는 10분거리. 철길을 걷다보면 잠시나마 어릴적 향수에 젖게 된다.
역사뒤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은 미인폭포로 이어진다. 미인폭포의 양옆으로 펼쳐진 절벽은 한반도 지질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지질학도들이 자주 찾는다.
심포리역은 열차의 독특한 운행방법으로 국내 철도사의 한장을 장식했다. 무연탄등 이 지역 특산물을 싣고 심포리역에 도착한 화차는 통리역(강원도 태백시)까지 경사가 급해 인클라인(경사진 곳에 레일을 깔고 전기모터로 열차를 끌어올리는 일종의 케이블 카)방식으로 운행됐다. 영동선중 통리역(7백70)과 아래쪽 심포리역은 직선거리로 1.1㎞. 이 구간은 워낙 경사가 심해 증기기관차의 힘으로는 통행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인클라인방식으로 화차를 움직였던 것. 인클라인 방식을 위해선 역과 역사이에 2개의 선로를 만들어야 했다.
통리역을 중심으로 각 선로에 있는 화차를 로프로 연결한다.이때 심포리역에 있는 화차는 통리역의 화차보다 무게가 가벼워야한다. 통리역에 설치한 6백마력짜리의 모터가 작동하면 화차가 내려가게 되며 그 힘으로 심포리역에 있던 화차가 올라온다.
그러나 객차는 너무 무거워 이 방식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때문에 강릉에서 심포리까지 열차를 타고온 승객들은 심포리역에서 하차한 후 통리역까지 걸어올라가 열차를 바꿔타야 했다. 이 지역 출신으로 29년간 역무원생활을 해온 홍성태(57.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씨는 "60년대 통리역으로 오르는 길목엔 냉차집이 번창했고 승객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야바위꾼들도 몰려들어 무법천지였다"고 회상한다.
그런가 하면 40 ~ 50명이나 되는 지게꾼들은 승객의 짐을 옮겨주는 지게질로 생업을 잇기도 했다. 운임은 20㎏정도의 짐을 올려주는데 4백 ~ 5백원으로 적지않은 돈이었다. 39년부터 사용됐던 인클라인시설은 지난 69년 터널개통과 함께 사라졌다. 지금의 철로길이는 7.7㎞. 그 사이에 완만한 경사의 터널 12개가 뚫려있어 디젤기관차가 힘겹게 오르내린다. 홍씨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길이가 가장 긴 산골터널(1천1백)에서 기관차는 과열된 엔진을 식히기 위해 정차했지요. 기관차 꽁무니에 붙은 객차는 연기가 가득한 터널안에 20분정도 갇히게 돼 승객들의 고생은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지난 70년대 이 지역을 운행하던 영동선 열차는 화차 뒤에 3 ~ 4량의 객차를 달고 다녔다. 힘에 부친 기관차는 터널을 지나면서 엔진을 식히기 위해 쉬었다.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달리는 영동선도 곧 환갑을 맞게 된다. 심포리역에서 통리역 방향으로 2백여 걸으면 멀리 통리재가 보인다.
영동과 영서를 연결해주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통리재. 열차의 기적소리는 세월의 강을 건너 우리에게 다가온다.
33. 삼척 중봉리 절골
청옥산 줄기인 고적대 아래 위치한 부채바위골과 중봉골은 무릉계곡의 비경은 아니지만 원시림과 맑은 계곡이 흘러 한적한 휴가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특히 중봉리 절골은 계곡 상류에 민가가 없어 연칠성령과 망군대에서 흐르는 냉기어린 물이 더없이 맑기만 하다.
절골로 접근하려면 우선 정선이나 태백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절골 입구는 정선과 태백을 연결하는 35번 국도상의 중봉리 마을 초입의 신용상회다. 길은 콘크리트가 포장돼 차량접근이 용이하며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이 길은 상수도보호수역이란 푯말을 지나면서 민박집이 하나 둘 눈에 띈다.
절골의 백미는 민박집이 있는 벌마을을 지나면서부터 하나 둘 나타나는 비경에 있다. 특히 턱골 이후론 음지라 시원하고 맑은 계곡 옆으로 모래사장이 놓여 여름철 휴가객이 자주 이용하곤 한다. 턱골 위 소내 마을까지는 길가에 소나무숲이 우거져 더위를 피하기 좋고 비포장길이 이어지고 한적한 탓에 사색하며 걷기에 좋은 곳이다.
폐교된 갈천초등학교 중봉분교는 근래 사찰로 활용하고 있다. 이 사찰 앞개울이 천엽에 가장 인기있는 곳이다. 코펠에 어항을 만들어 밥과 된장을 넣어두면 굵직한 돌고기들이 쉽게 걸려든다. 중봉분교부터는 민가도 없고 단지 절골 최상류에 정연홍씨 집이 있을 뿐이다. 절골의 백미는 중봉분교에서 정연홍씩 집까지. 휴식년인 고적대를 통한 하산은 가능하지만 입산은 허가를 맡아야 한다.
34. 춘천 품걸리
KBS-TV '이것이 인생이다'에서 한 시각장애자가 산골 오지에서 토종벌을 키우며 살아가는 모습을 방송한 적이 있다. 그가 사는 곳이 단 세 가구가 사는 춘천시 동면 품걸2리다. 품걸리는 외지인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고 찾기도 쉽지 않은 곳으로 동강처럼 사람들의 잦은 발길로 파괴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소개한다.
사실 오지란 일반 관광지처럼 소개할 것이 별로 없는 곳이다. 무언가 볼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느끼기 위해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품걸리는 찾아가는 외지인이 없는 관계로 민박집이 없다. 하 지만 문을 두드리고 하룻밤 쉬어가기를 청한다면 마다할 사람도 없을 것 같다. 품걸2리는 선착장에서 두시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산골마을로 사람들은 조그만 밭에 자라는 옥수수, 토종 꿀벌들과 함께 살고 있다. 삼림욕이 따로 필요없는 이 길은 구비돌 때 마다 나타나는 뽕나무 오디가 나그네의 발길을 더디게 한다. 이곳의 오디는 무척 신선하고 달콤해서 아직도 단맛이 입에 맴도는 것 같다. 이 울창한 잣나무와 밤나무, 뽕나무 숲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는 그곳에 숨은 듯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사는 영춘-영규 형제를 만나면 자연에 대한 자격증 하나는 따올 수 있다. 이들은 벌의 날갯짓만 들어도 어디가 아픈지 알아내는 그런 사람들이다. 품걸2리 아랫동네에는 주막집이 있는데 몸이 안좋아 이곳에 들어온 부부가 살고 있다. 누가 올까 싶은데 선착장이 있는 품걸1리에서 농사일을 마친 주민들이 트럭을 몰고 한시간 이상 달려오는 곳이다. 이곳에서 도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자연과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며 놀라는 것이 전부다. 이곳 사람들의 삶이 귀하게 보전되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부탁드린다.
▶ 가는 길
가는 길은 두가지다. 하나는 양평에서 44번 도로를 타고 홍천-성산리를 지나 왼쪽길로 들어서서 비포장 도로를 두시간 가량 달려 도착하는데 사륜 구동이나 하부가 높은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춘천에서 소양강댐 주차장에 도착해 셔틀버스를 타고 선착장에 와서 하루 두번 운행하는 배를 타고 품걸리 선착장에 도착한다. 이 배는 사람이 안보이면 그냥 지나치므로 시간이 되면 선착장에 나와 있어야 한다.
35. 대관령 차항마을
강원도에서도 가장 설경이 아름다운 곳은 대관령이다. 대관령 옛 고속도로 주변과 삼양목장, 차항마을이 소문난 눈마을이다.
옛 고속도로는 누구나 한번쯤 넘었던 길이지만 차량통행이 잦았던 당시에는 자동차 매연에 눈이 더럽혀져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눈이 내린 다음에야 사진작가들이 찾아와 설경을 찍을 정도로 마니아들이 많다. 길섶에는 민가 한채 찾기 힘든 목초지다. 백설로 뒤덮인 목초지의 곡선이 아름답다. 옛 고속도로 휴게소 옆에는 선자령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놓여 있고 주변에는 평창 국유림 관리사무소에서 조성한 전나무 숲이 병풍을 두른 듯 서 있다. 창처럼 날카로운 나무를 덮은 솜눈. 눈은 아무리 모난 것들이라도 포근하게 감싸줄 만큼 부드럽다. 옛 고속도로 주변의 선자령∼대관령∼능경봉을 잇는 코스는 산악인 사이에서는 신설 산행코스로 유명하다.
대관령 삼양목장은 바람이 거칠어 포근한 눈을 볼 수는 없다. 발자국을 쉬 덮어버릴 정도로 몰려다니는 눈보라가 거센 곳이지만 하늘과 맞닿은 설원의 광활함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하기 충분하다. 목장은 모두 6백만평.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이중 목초지는 4백50만평. 목장 내 임도를 모두 합하면 120㎞나 된다. 목장을 한바퀴 도는 주도로만도 22㎞다. 겨울에는 정상까지 가는 것은 힘들고 바람이 세지 않은 저지대만 둘러볼 수 있다. 대관령 목장은 영화와 드라마, CF 등의 단골무대다. 서울 종합촬영소만큼이나 많은 작품을 찍었다. ‘태극기 휘날리며’ ‘별’ ‘바람의 파이터’ ‘이중간첩’ ‘중독’…. 드라마로는 ‘가을동화’ ‘남자의 향기’를 목장에서 찍었다. ‘가을동화’로 유명해진 은서나무와 준서나무, ‘연애소설’의 차태현나무 등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암면 차항마을은 눈이 오지 않으면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평범한 산마을이다. 마을 들머리엔 고만고만한 밭고랑이 흩어져 있고,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자그마한 목장들이 나온다. 목장이 들어선 것은 25년 전 농업진흥청 축산기술소가 들어오면서부터다. 평창의 브랜드 한우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눈덮인 차항마을은 마치 추사의 세한도를 보는 것 같다. 목초지는 제주도의 오름처럼 봉곳하게 솟아 있다. 초지마다 이정표처럼 세워놓은 나무 두어 그루의 모습이 평화롭다. 차항마을은 눈이 많이 오면 발이 빠지지 않도록 설피를 신고 소가 끄는 썰매 발구로 짐을 실어나르던 곳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전통 사형스키를 타고 다니며 창으로 멧돼지를 잡았던 눈마을이었다. 1970년대 들어 사냥이 금지되면서 사라져버린 썰매사냥은 지금은 마을 어른들의 구수한 추억 속에나 남아 있다.
동해에서 넘나드는 습한 바람들을 눈꽃으로 바꿔놓는 대관령. 겨울이 겨울답게 남아 있는 설국(雪國)이다.
▶ 여행길잡이
영동고속도로 횡계IC를 나와 용평리조트 쪽으로 우회전. 고가 아래 갈림길에서 바로 좌회전하면 대관령 옛 고속도로다. 횡계읍 쪽으로 빠진 뒤 횡계읍로터리를 지나면 하천이 있는 3거리. 좌회전해 계속 가다보면 다시 3거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 길로 7㎞ 정도 달리면 삼양목장(033-336-0885)이다. 차항마을은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만나는 3거리에서 ‘유천’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한다. 우회전하면 용평리조트 가는 길. 횡계양조장을 지나면 간판조차 없는 구멍가게. 맞은편 전봇대가 붙어 있는 붉은 벽돌집을 따라 오른쪽 샛길로 빠지면 차항마을 목장지대가 시작된다. 겨울철에는 반드시 체인을 준비해야 한다. 축산기술연구소 길도 설경이 아름답다. 차항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유천 방향으로 직진, 456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이 길에서 CF도 많이 찍었다.